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지.
“괜찮은 삶”이란 말에 망설일 때,
나는 이 소설을 떠올렸다 - 남아있는 나날
“사랑해” 대신 “유머 감각을 길러보자”고 말하는 사람에게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에서,
노년의 스티븐스가 해안 도시의 벤치에 앉아
낯선 노신사에게 들은
이 말은 단순히 하루의 특정한 시간대를 가리키는 듯하면서도,
인생의 어떤 시기를 은유적으로 나타내는 문장이다.
하루가 저물 듯, 인생이 기울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에야 ]
비로소 사람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된다.
노신사의 이 한마디는
인생의 황혼기를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말이지만,
그 말을 듣는 스티븐스의 반응은 오히려 복잡하다.
그는 지난날의 잘못된 충성, 회피, 억눌린 감정,
그리고 감히 말하지 못했던
사랑과 같은 것들을 더듬으며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되짚는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좀 더 유머 감각을 길러보자.” 그리고 그는
다시 자신이 해왔던 일로 돌아간다.
품위 있는 집사라는 정체성을,
어떤 변화도 없이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다짐을 한 것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더 깊은 질문을 느낄 수 있었다.
스티븐스는 분명히 인생의 저녁에 도달했고,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 속에서 실수를 깨닫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가 결국 택한 것은 변화가 아니라 익숙한 일상의 연장이었다.
후회의 무게는 그의 말 한마디, 묘사 하나하나에 배어 있지만,
그 무게를 딛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이 작품은
마치 조용한 고백처럼 흐르면서도, 독자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하루 중 가장 좋은 때가 저녁이라면,
당신은 그 저녁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가?”
그리고 더 나아가,
하루의 시작인 아침, 활기차게 흘러가는 점심, 고요히 저무는
저녁을 내 인생의 비유로 생각해보게 된다.
아침이 인생의 시작이라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할까?
아침은 인생의 첫 시기, 유년기이자 청춘이다.
가능성과 의지가 가득 찬 시간 스티븐스의 젊은 시절은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한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열망은 그를 끊임없이 절제하고 단련하게 했다.
감정보다 책임, 욕망보다는 품위.
그러나 그가 선택하지 않은 감정들, 표현하지 않은 사랑,
외면한 진심은 모두 그 아침에 이미 잊혀지고 말았다.
누구나 인생의 시작에서 꿈을 꾸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도 그랬다.
어릴 땐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뭐든지 잘해내고 싶고,
어른들이 이쁘다고 칭찬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욕망은 점점 더 많은 해야 할 일을 불러왔고,
그 일이 쌓여 어느새 감정보다는
책임, 질문보다는 정답을 앞세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스티븐스의 아침도 그랬다.
위대한 집사가 되고 싶다는 꿈. 그 꿈은 곧
그의 행동을 통제하는 원칙이 되었고,
이어 자신의 감정까지 접어두며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티븐스, 그리고 우리가 아침이라는 시간에
진심을 말하는 법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너무 이르게 어른이 되려 하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단지 목표와 역할만이 아니라,
정직한 감정과 인간다운 결핍도 담아야 하지 않을까.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후회를 덜어주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점심은 인생의 가장 바쁜 한가운데다.
사회적 역할이 정해지고,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며, 선택의 무게가 커지는 시기.
스티븐스가 가장 위대한 집사로 살았던 시간도 이 때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간호하면서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사랑하는 여인
켄턴에게조차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자신의 일과 자부심이라는 그릇에 자신을 너무 꼭 맞게 가두었다.
점심은 가장 찬란해 보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감각해지기 쉬운 시간이다.
그만큼 바쁘고, 삶이 나를 몰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엔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무엇을 잃고 있는가'를 스스로 묻는 감각이 중요하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 반복되는 선택 속에서,
우리는 정작 나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리고 저녁. 하루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정리하게 될까.
만약 인생이 저녁으로 접어들고 있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스티븐스는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그땐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며, 품위의 언어로 과거를 덮는다.
그는 오직 “좀 더 유머 감각을 길러보자”는 말로 하루를 정리하려 한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스티븐스처럼 품위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접어두며 살 것인가,
아니면 이제라도 늦기 전에 내 진심에 솔직해질 것인가.
그는 “유머 감각을 길러보자”고 말했지만,
나는 나에게 “감정을 외면하지 말자”고 말해주고 싶다.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고, 후회되면 인정하고, 슬프면 충분히
울 수 있는 그런 남아있는 나날을 살고 싶다.
나는 생각한다. 남아있는 나날을 삶의 연장처럼 살고 싶은가,
아니면 변화의 시작으로 살고 싶은가?
물론 그 어떠한 삶도 잘못된 삶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사랑을 놓치지 않고,
때때로 울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삶. 그것이 스티븐스의 삶을
마주한 우리가 반대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남아있는 나날>은 단지 한 노신사의 회상을 담은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에게 충성하며 살아왔는가.
우리는 무엇을 감추며 버텨왔는가. 우리는 과연 진심으로 살아왔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하루, 이 나날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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