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삶

노인의 덕

매일 기쁨 2022. 11. 8. 08:24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人生)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變化)가 많아 예측(豫測)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복(福)이 화(禍)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등, 변화는 끝이 없고 그 깊이는 예측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새옹지마이니 실패(失敗)하면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한 어부(漁夫)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부에게는 아내와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自身)을 이어 두 아들 모두 어부가 되길 바랐습니다.

 

어느 날 어부는 화창(和暢)한 날씨에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에 나갔습니다. 아내가 정성(精誠)껏 싸준 도시락까지 챙겨

 

기분 좋게 조업(操業)을 시작(始作)했는데, 오후(午後)가 되자 맑았던 날씨가 음산(陰散)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바람이 불고 폭풍(暴風)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삼부자(三父子)가 탄 조그만 배는 쉴 새 없이 곤두박질쳤습니다.

 

밤이 되도록 맹렬(猛烈)한 파도(波濤)에 도무지 방향(方向)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 남았던 희망(希望)마저 절망(絶望)으로 바뀌는 순간(瞬間), 둘째 아들이 소리쳤습니다.

 

“아버지 저쪽에 불기둥이 보여요. 우리는 살았어요!”다시금 희망을 부여잡고 필사(必死)의 힘을 다해 불길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가까스로 포구(浦口)에 도착(到着)한 삼부자는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포구에는 어부를 마중 나온 아내의 모습까지 보였습니다.

 

그런데 무사히 돌아온 삼부자의 모습에 환성(歡聲)을 지르고 달려올 줄 알았던 어부의 아내는 고통(苦痛)스러운 표정(表情)이 역력했습니다.

 

어부가 물었습니다.“여보, 우리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데 당신은 기쁘지도 않소?” 남편(男便)의 말에 아내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에 우리 집 부엌에서 불이 나 집이 다 타버렸어요. 저만 가까스로 살아남았어요. 미안해요.”

 

그 순간 어부의 입에서는 ‘아~’라는 탄성(歎聲)과 함께 ‘그러니까 그 불기둥이 우리 집이 타는 불기둥이었구나!’ “여보 우리가 폭풍우(暴風雨)에 방향을 잡지 못해 난파(難破) 직전(直前)에 있었소.

 

그런데 멀리 불기둥을 보고 노 저어 살아온 것이오. 너무 상심(喪心)하지 마오, 그 덕(德)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고, 당신도 무사(無事)하잖소. 집이야 다시 지으면 되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분명(分明)한 건 절망 뒤에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絶對) 포기(抛棄)하면 안 됩니다.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실패(失敗)하면 다시 일어서면 그만입니다. 희망이있는 한 삶은 계속(繼續)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특히, 우리네 인생이 황혼(黃昏)녘에 이르면 좌절(挫折)과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철학자(哲學者) ‘세네카’는 말했습니다.

 

“노년을 소중(所重)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할지 알든 모르든 즐거움이 가득 넘치기 때문이다.

 

인생은 추락(墜落)하기 전, 천천히 아래를 향해 내려올 때가 가장 즐겁다. 드디어 뭔가를 원(願)하는 데 질려버렸고 다 끝났다니 얼마나 마음이 편(便)하겠는가?”

 

그리고 미국의 뉴욕타임스 기자 ‘존 릴런드’(59)는 “노년은 흔한 얘기로 꼰대 아닌 어른으로 아름답고 풍요(豊饒)롭게 나이 들어갈 때 만족(滿足)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류(人類)는 현재 초 고령사회(高齡社會)를 향해 질주(疾走)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65세 이상 인구비율(人口比率)이 27%를 차지해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한국도 올해 현재 14%에 이르며 그 비율은 해마다 높아갑니다.

 

 

기자(記者)는 나이 듦과 죽어감에 부정적(否定的)인 생각을 갖고, 뉴욕에 사는 85세 이상의 초 고령자 취재(取材)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노인(老人)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관점(觀點)이 확 달라짐을 느꼈다고 합니다. 노인들은 변해가는 자신과 처(處)한 환경(環境)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가운데,

 

그 안에서 가진 최소한(最小限)의 능력(能力)을 이용(利用)해 최대한(最大限)의 행복(幸福)을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상(日常)마저도 여전히 그들에게는 기쁨이며, 선택적(選擇的)으로 기억(記憶)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행복해야 할 이유(理由)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늙어 어떤 모습일까?” 살면서 한 번도 자문(自問)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회가 고령화되고 있다고 한탄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노인들을 젊은 사람들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當)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사회에서도 노인들에게 묻지 마 폭행을 저지르는 일이 마구 일어나는 실정(實情)입니다.

 

그래서 노인만을 위한 모임과 프로그램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노년인데도 젊을 때처럼 바쁘게 활동(活動)하면서 어떤 성과(成果)를 내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 늙는다는 것을 회피(回避)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곤란(困難)합니다.

 

늙어 간다는 사실을 직시(直視)해야 삶은 성취(成就)되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지혜(智慧)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늙음에 대한 성찰(省察)은 인간의 신비(神秘)를 알아 가는 과정(過程)입니다. 나이 드는 기술에는 몇 가지 기본원칙(基本原則)이 있습니다.

 

(1) ‘받아들이기’, (2) ‘놓아 버리기’, (3) ‘자신을 넘어서기’이지요. 나이 드는 기술(技術)을 배우려는 사람은 ‘노년의 덕(德)’을 습득(習得)해야 합니다.

 

이른바 곱게 늙느냐? 아니냐? 는 당사자(當事者)인 우리 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1. 첫째, 받아들이기입니다.

 

받아들이기는 과거(過去)와 화해(和解)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계(限界)를 받아들이고, 고독(孤獨)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2. 둘째, 놓아버리기입니다.

 

놓아버리기는 재산(財産)에 집착(執着)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에 매달리지 않고, 관계(關係)에 느긋해지며,

 

성(性)에서 자유(自由)로와 지고, 재색명리(財色名利 : 인간이 갖는 모든 욕망)에 초연(超然)하는 것입니다.

 

3. 셋째, 자신을 넘어서기입니다.

 

자신을 넘어서기는 자기(自己) 경계(境界)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나보다 큰 어떤 것에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은 신앙(信仰)과 수행(修行)에 힘을 써 공덕(功德)을 쌓으므로 해서 내생(來生)을 준비(準備)하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물질세계(物質世界)와 이별(離別)하고 영적(靈的)인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의 희로애락(喜怒哀樂)에 자유(自由)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물질세계를 살면서도 동시(同時)에 영적인 세계를 살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노년의 덕’을 쌓으면 황혼의 미학(美學)은 지금(只今)부터가 아닐 런지요!<덕산 김덕권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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